스쿼트나 데드리프트를 세게 한 다음 날, 계단을 내려가기도 힘들 만큼 허벅지가 뻐근하면 손이 먼저 가는 게 이부프로펜이나 나프록센 같은 소염진통제입니다. 통증이 없어지니 운동도 계속할 수 있고, 딱히 부작용도 없어 보이니 습관이 됩니다. 그런데 이 약이 없애는 게 정말 '불편함'뿐일까요. 소염진통제가 몸속에서 실제로 막는 건 통증 신호 자체가 아니라, 그 통증을 만드는 물질입니다. 그리고 그 물질은 통증만 만들지 않습니다.
1. 통증을 만드는 물질이, 회복도 지시한다
NSAID(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는 COX(사이클로옥시제나제)라는 효소를 막아서 작동합니다. COX는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을 만드는데, 이 프로스타글란딘이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통증 신경을 예민하게 만듭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아는 '진통제의 원리'입니다. 문제는 프로스타글란딘이 통증 담당 하나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근육이 무거운 무게에 눌려 미세하게 손상되면, 그 자리에 프로스타글란딘이 모이면서 위성세포(satellite cell)를 깨우고 근단백질 합성 신호를 켭니다. 위성세포는 손상된 근섬유를 고치고 새 핵을 공급해 근육이 굵어지도록 돕는 세포입니다. 즉 프로스타글란딘은 '아프다'는 신호이자 동시에 '고쳐서 더 튼튼하게 만들어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소염진통제로 이 신호를 줄이면 통증도 줄지만, 이론적으로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회복·적응 신호도 함께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게 이 약을 습관처럼 먹기 전에 알아야 할 첫 번째 사실입니다.
2. 그런데 연구 결과는 한 방향이 아니다
여기서 정직하게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소염진통제를 먹으면 근성장이 안 된다"고 단정할 만큼 근거가 깔끔하지 않습니다. 고용량을 상시로, 매일 복용한 경우에는 근력·근비대 반응이 둔화됐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반면 일반적인 용량을 가끔, 필요한 날에만 먹은 경우에는 눈에 띄는 차이가 없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심지어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일부 연구에서는 오히려 소염진통제 복용군의 근력 반응이 나쁘지 않거나 더 나았다는 결과도 나왔는데, 나이가 들수록 염증 반응이 과도하게 길게 이어지는 경향이 있어 이를 적절히 눌러주는 쪽이 유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정리하면, 소염진통제와 근육 적응의 관계는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누가 먹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리는 영역입니다. 젊고 건강한 리프터가 어쩌다 한 번 먹는 것과, 매 운동 후 상시로 챙겨 먹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3. 그래서 언제 먹고, 언제 참아야 하나
근거가 갈린다고 판단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전에서 쓸 수 있는 기준은 이렇습니다. 운동 후 흔한 뻐근함, 즉 지연성 근육통(DOMS)만 있는 경우라면 굳이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DOMS는 근육이 망가졌다는 신호도, 잘 자라고 있다는 신호도 아닌 그냥 부수적인 반응이라는 점은 이미 다룬 적이 있으니 여기서는 한 줄로만 짚습니다. 반대로 통증이 잠을 설칠 정도이거나, 계단을 내려가기·앉았다 일어서기 같은 일상생활 자체가 힘들 정도라면 먹는 쪽이 낫습니다. 회복은 잠자는 동안 가장 많이 일어나는데, 통증 때문에 잠을 못 자는 손해가 소염진통제 한두 번 먹어서 생길 수 있는 손해보다 훨씬 큽니다. 부상을 진단받고 의사가 소염진통제를 처방했다면 이 글의 어떤 내용도 그 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처방받은 대로 복용하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상시 복용은 피하고 정말 필요한 날에만 먹는 방향으로 씁니다. '혹시 몰라서 미리' 먹는 습관이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피해야 할 패턴입니다.
4. 잘 알려지지 않은 위험 — 위장보다 신장이 더 문제일 수 있다
소염진통제의 위장 부작용(속쓰림, 심하면 궤양)은 그나마 잘 알려져 있습니다. 덜 알려진 쪽은 신장입니다. 신장은 혈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프로스타글란딘의 도움을 받아 혈관을 넓혀 자기 기능을 지키는데, NSAID가 이 경로를 막아버립니다. 평소라면 큰 문제가 아니지만, 땀을 많이 흘려 체내 수분이 줄어든 상태(탈수)에서 고강도 운동까지 겹치면 신장으로 가는 혈류가 이미 빠듯한 상황이 됩니다. 여기에 소염진통제까지 더해지면 신장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한 번에 세 겹으로 쌓입니다. 특히 위험한 패턴은 통증이 생기기도 전에 '예방 삼아' 운동 전에 미리 먹는 습관입니다. 아직 탈수와 고강도 훈련이 겹치기도 전에 신장 부담 요인을 먼저 깔아두는 셈이라, 흔히 하는 실수 중 가장 손해가 큰 축에 듭니다. 혈압약을 복용 중이라면 일부 계열은 NSAID와 상호작용해 혈압 조절이나 신장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지병이 있거나 이미 다른 약을 복용 중이라면 소염진통제를 습관적으로 쓰기 전에 의료진과 상의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참고로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 성분)은 같은 '진통제'로 묶이지만 COX 억제 작용이 약해서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과는 거의 없습니다. 열이나 단순 통증만 조절하고 싶을 때는 NSAID와 아세트아미노펜이 서로 다른 도구라는 점을 기억해두면 좋습니다.
5. 약 없이 통증을 줄이는 방법
소염진통제가 유일한 선택지는 아닙니다.
- 그날 볼륨을 줄이기: 무게는 유지하되 세트·반복 수를 줄이면 자극은 남기고 부담은 던다.
- 가벼운 움직임으로 혈류를 늘리기: 가벼운 걷기나 저강도 유산소는 근육으로 가는 혈류를 늘려 회복을 돕는다.
- 수면과 단백질 총량을 먼저 채우기: 약보다 이 두 가지가 회복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 시간에 맡기기: 같은 운동을 반복하면 신경계와 근육이 그 자극에 익숙해지면서(반복 효과) 다음번 근육통은 저절로 줄어든다.
핵심 요약
- NSAID는 프로스타글란딘 생성을 줄여 통증을 낮추지만, 같은 물질이 근육 회복·적응 신호에도 관여한다.
- 상시 고용량 복용은 적응을 늦췄다는 보고가 있지만, 가끔 일반 용량 복용은 차이가 크지 않다는 보고도 있다 — 단정할 근거는 아직 없다.
- DOMS만 있으면 굳이 먹지 않아도 되고, 잠을 못 잘 정도의 통증이면 먹는 편이 낫다. 처방받았다면 처방을 따른다.
- 탈수 상태에서 고강도 훈련과 NSAID를 함께 쓰는 조합, 특히 '예방 삼아 운동 전' 복용이 신장에 가장 위험하다.
- 볼륨 조절, 가벼운 움직임, 수면과 단백질, 시간이 약 없이도 통증을 줄이는 방법이다. 지병이 있거나 다른 약을 복용 중이라면 의료진과 상의하자.